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강 방어선 전투 (문단 편집) ==== 영등포 지구 ==== 이 정면의 제8연대(장, 서종철 중령) 역시 [[한강철교]]도 적의 전차가 건너게 되고, 또 오류동쪽에서 경인가도를 따라 들이닥친 적이 영등포 시내에서 연대의 배후를 교란하게 함으로써 이 전선을 떠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. 연대장의 부상 : 이른 새벽부터 영등포 일대에 적의 포격이 시작되었다. 이에, 구청(구) 부근의 연대 전방지휘소에서 철야한 연대장 서종철 [[중령]]은, 적의 포탄이 동 지휘소 주위에 작렬하자, 그들의 도하공격이 재개되었다고 판단하고, 즉시 [[지프]]를 급히 몰아 제1선(김포가도의 제방)으로 달려갔는데, 그가 미처 제방에 다다르기 전에 적의 포탄이 강타하게 되어, 차량이 대파되면서 연대장은 다리에 파편상을 입게 되었다.[* 이 부분은 다른 기록도 있다. 육사 8기생 회고록 "노병들의 증언"에 실린 8연대 소속 중대장 안태갑의 증언에 따르면 8연대장은 전투가 심해지자 엉덩이를 권총으로 쏘아 적탄에 의한 상처로 위장하고 후방으로 후송되었다. 이 사실이 연대에 알려지자 연대의 전선이 와해되는 결정타가 되었다고 한다.] 이때에 마침 이와 같은 심상치 않은 포성을 듣고, 후방지휘소에서 달려간 부연대장 이현진 중령이 도중에서 연대장을 구하여 시흥으로 후송케 되었는데, 이 무렵 그 일원에서는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은 가운데에서 전선의 상황은 미처 확인되지 않았으나, 삼삼오오로 발길을 남쪽으로 돌리는 장병들이 보이기 시작한 바, 이미 전황이 결정적으로 기울었음을 알 수 있었다. 이리하여 연대장을 대리하여 연대의 지휘를 맡게된 부연대장이 다시 구청(구) 부근으로 달려갔을때에는, 그곳의 연대본부요원 수명이 쓰러져 있어, 벌써 적이 휩쓸고 지나간 흔적이 역력하였다. 이에 동 전선의 파탄을 확인한 그는 다시 시흥쪽으로 가서 [[안양천]]의 지류인 마장천([[도림천]])의 교량(구청 서남쪽 2.2㎞)에서 병력 수습에 나섰다. 전선의 철수 : 3일 아침이 되면서 연대의 전선이 무너짐과 때를 같이하여 대안의 적이 [[여의도]]로 도하함으로써 마침내 영등포 일원을 첨령게 된 것으로 추단되나, 이때 김포가도의 제1선에 버티고 있던 제3대대장 박태운 소령이 피력한 바에 의하면, 동 [[대대]]의 철수상황은 이러하다고 한다. ||『이날 아침,우리 등 뒤쪽인 영등포 구청쪽에서 전차소리가 나더니, 해가 뜰 무렵 우측의 노량진―영등포―김포 삼거리에 [[전차]] 1대가 들어섰다. 시내쪽에서(부평쪽에서 온 듯) 제방위로 올라선 모습으로 포신을 돌려 우리에게 사격을 가하였다. 그래서 [[대한민국 육군/특공대|특공대]] 2개조로써 그 전차를 향하여 육박공격한 결과 그것을 파괴하고, 밖으로 기어나온 적의 [[전차병]] 2명을 사살하였다. 그런 상태에서 시내가 소연한 가운데 얼마를 지나니까, 어디선가 기적소리가 들렸다. 쌍안경으로 살펴보니, [[한강철교]]위로 기차가 건너오고 있었는데, 무개[[화차(철도)|화차]] 10여량을 기관차가 뒤에서 밀었고, 화차 위에는 커다란 물체가 여럿 실려있었다. 자세히 보니 [[전차]]였는데, 모두 13대였다. 그 기차가 철교를 지나 노량진쪽으로 들어온 뒤 2시간쯤 지나니까, 영등포 시내가 차량의 소음으로 요란하였다. 그래서 일이 틀렸다고 판단하고, 철수키로 하였다. [[박격포]] 등 [[중화기]]는 파묻고 모두가 경편한 단독무장으로 철수하였는데, 영등포 시내로 들어가지 않고, 서쪽의 안양천쪽으로 우회하여 그 천변을 따라 남쪽으로 향하였다. 제방을 따라 얼마만큼 가다가 말이 우는 소리가 들려, 주위를 살펴보니 바로 제방밑에 [[야포]]가 보였다. 그 곁에 우의를 입은 병사가 있길래(그날은 비가 좀 뿌렸다)「그 어느 부대냐?」하고 물었더니,「18연대다!」라는 것이었다. 처음에는 우리 제18연대가 아직도 건재해 있구나 하고 생각하였는데 다음 순간 자세히 살펴보니, 북한군이었다. [[북한군]] 제18연대(제4사단)였던 것이다. 거기서 우리의 철수대오가 흩어졌다. 각개로 분산되어 시흥에 이르니, 읍내는 텅비어 있었다. 그곳에서 연락[[장교]] 박근창 소위와 함께 가까스로 흩어진 병력을 수습하여 본 즉, 그 사이에 50여명이 간데가 없어지고 말았다. 안양에 가니 헌병들이 보였으며, 오후 늦게 [[수원]]에 집결하였다.』|| 어쨌든 적의 전차에 의하여 연대지휘부가 피습됨으로써, 6일동안이나 단 한명의 적병도 아군의 방어진지인 제방을 밟는 것을 허락치 않았던 한강선이 결국 무너지게 되고 만 것이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